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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광부의 날, 기억과 계승의 날이 되어야 한다

손정식 태백시 문화관광해설사

기사입력 2026-07-13 05:15 수정 2026-07-13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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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광부의 날을 맞으며, 오랜 세월 광산 현장에서 석탄을 캐며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벅찬 감회와 깊은 소회를 느낀다. 광부들의 희생과 헌신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날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반갑고 뜻깊지만, 한편으로는 이 날이 있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는 아쉬움도 마음 한편에 남는다.

 

광부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기까지 애써 주신 관계 기관과 지역사회, 광산 근로자 단체를 비롯한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번 광부의 날 제정은 한 시대를 묵묵히 떠받쳐 온 광부들의 삶과 노동을 국가가 뒤늦게나마 기억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가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 석탄은 국민의 생활을 지키고 국가 산업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광부들은 깊은 땅속 막장에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붕락과 가스 폭발, 출수 사고의 위험을 견디며 하루하루 생명을 담보로 석탄을 캐냈다. 뜨거운 지열과 짙은 탄가루 속에서 흘린 광부들의 땀은 공장의 기계를 움직였고, 기차를 달리게 했으며, 추운 겨울 국민의 방을 따뜻하게 데우는 불꽃이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는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어둡고 깊은 지하 막장에서 묵묵히 일했던 광부들의 공로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일했던 광부들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광부의 날은 단순히 기념식을 열고 하루 동안 행사를 치르는 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광부들이 걸어온 고단한 삶과 노동을 되돌아보고,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순직 광부들의 넋을 위로하며, 살아남은 광부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보듬는 날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광부들이 남긴 강인한 노동정신과 산업화의 역사를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는 기억과 계승의 날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무엇보다 광부의 날 행사에서는 순직 광부 위령탑에 모셔진 영령들을 기리는 위령제가 가장 중심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부의 날이 존재할 수 있는 까닭은 목숨을 걸고 막장을 지켰던 광부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에는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순직 광부가 있다. 이들의 희생을 엄숙하게 추모하는 일은 어떤 축하 공연이나 기념행사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순직 광부 유가족들에게 광부의 날 행사와 위령제 일정을 미리 알리고, 유가족들이 직접 참석해 가족을 추모할 수 있도록 세심한 준비와 배려도 필요하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유가족의 슬픔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행사 주최 측에서는 유가족의 참석이 형식적인 초청에 그치지 않도록 교통편과 숙박, 체류 지원 등 실질적인 참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광부의 날 전야제 또한 흥겨운 공연과 볼거리만을 앞세우기보다는 광부들의 넋을 위로하는 살풀이와 진혼의식으로 문을 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위에 광부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 낭송, 무용, 광산 지역 예술인들의 공연이 함께 어우러진다면, 단순한 축제를 넘어 추모와 문화가 공존하는 의미 있는 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광부의 날은 태백 지역만의 행사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 석탄산업을 이끌었던 정선과 삼척, 영월, 도계, 문경, 보령, 화순 등 전국의 광산 지역과 광부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전국적인 기념행사로 발전시켜야 한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광산의 역사가 있고, 그곳에서 살아온 광부와 가족들의 사연이 남아 있는 만큼, 광부의 날은 전국 광산 지역의 역사와 기억을 하나로 잇는 상징적인 날이 되어야 한다.

 

행사 기간에는 태백 시내 곳곳에서 광부의 역사와 삶을 알리는 사진전과 기록전, 광산 장비 전시, 탄광촌 생활문화 체험, 광부들의 구술 기록을 들려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면 좋겠다. 시민과 관광객이 단순히 공연을 보고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광부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광부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작업복과 안전모, 작업 도구, 갱도 안에서 주고받았던 이야기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탄광촌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생활용품 등을 전시한다면, 광부의 역사는 책 속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의 역사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와 학생들이 광부들의 노동과 희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적 프로그램을 함께 마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행사 기간 동안 시민들이 검은 리본이나 광부를 상징하는 표식을 달고 순직 광부들의 희생을 함께 기억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각 동과 기관, 사회단체, 학교와 지역 예술인들이 참여하여 이삼 일 동안 추모와 기념의 분위기를 이어 간다면, 태백 전체가 광부들의 삶과 역사를 기억하는 하나의 거대한 역사 현장이 될 수 있다.

 

광부의 날을 맞아 모범 광부와 진폐재해자, 광산 유가족, 석탄산업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을 찾아 그 공로를 알리고 예우하는 일도 필요하다. 광부들은 국가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폐광 이후에는 제대로 된 보상이나 사회적 존중을 받지 못한 채 세월 속에서 잊힌 경우가 많다. 살아 계신 광부들이 자신의 삶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역사회가 따뜻한 관심과 합당한 예우를 보여주어야 한다.

 

다만 광부의 날 행사의 규모가 커지고 프로그램이 많아질수록 본래의 의미를 잃고 행사를 위한 행사로 변질되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화려한 무대와 유명 가수의 공연,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이 광부의 희생과 역사를 기리는 일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광부의 날의 주인공은 행사 관계자나 초청 인사가 아니라 광부와 그 가족들이다. 행사장 앞자리는 마땅히 광부와 진폐재해자, 순직 광부 유가족들에게 돌아가야 하며, 그들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행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광부들의 삶이 빠진 채 화려한 축제만 남는다면, 광부의 날을 제정한 본래의 뜻은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기에 성대하고 화려한 행사보다는 규모가 조금 작더라도 광부들의 아픔과 자긍심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내실 있는 행사가 되어야 한다. 광부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하고, 광부들의 증언을 보존하며, 순직 광부를 추모하고, 살아 계신 광부들의 삶을 예우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광부들의 기억과 증언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사업도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고령의 광부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면서, 막장의 작업 방식과 탄광촌의 생활, 광산 사고의 기억, 동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광부들의 생생한 증언을 영상과 음성, 글로 남겨 후대에 전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과제이다.

 

광부의 날은 이제 첫걸음을 내디뎠다. 첫 행사가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광부와 유가족, 시민들의 의견을 충실히 듣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간다면 해마다 더욱 의미 있고 품격 있는 국가기념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광부의 날이 일회성 축제로 끝나지 않고, 광산 노동의 역사와 산업 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 날이 단순히 지나간 석탄산업을 추억하는 날에 머물지 않고, 광부들의 자긍심을 되살리며 그들이 남긴 책임감과 연대의 정신, 강인한 노동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후손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깊고 어두운 땅속에서 흘린 수많은 광부들의 땀과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기억해야 한다.

 

광부의 날이 광부와 유가족만의 날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 산업화의 뿌리를 되돌아보고 이름 없이 헌신한 노동자들에게 감사하는 날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또한 광부들의 삶과 역사가 과거 속에 묻히지 않고 대한민국의 소중한 산업유산으로 계승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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