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이 일터의 풍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셀프계산대, 키오스크, 챗봇 상담은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다. 효율성과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 아래, 인간의 노동은 점점 더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일자리의 양적 감소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이 대체되고 있는가’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무엇이 대체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이다.
앨리슨 J. 퓨의 저서 『사람의 마지막 직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상담사, 간호사, 교사, 관리자 등 다양한 직군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연결노동(connective labor)'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이나 기능 수행을 넘어,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다시 상대에게 반영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인간을 ‘대상’이 아니라 ‘관계’로 대하는 노동이다는 것이다.
연결노동은 오랫동안 노동시장과 정책 논의에서 과소 평가되어 왔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이 노동은 측정하기 어렵고, 표준화하기 어려우며, 생산성 지표로 환산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간호사의 환자 응대, 교사의 학생 지도, 상담사의 경청은 모두 필수적이지만, 이를 시간당 생산량이나 성과지표로 정량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 결과, 조직은 이러한 노동을 ‘비본질적’이거나 ‘부가적’인 요소로 취급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동화가 진전될수록 연결노동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 된다. 기술은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업무를 대체하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인간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진다. 인간의 감정은 비선형적이고, 맥락 의존적이며, 때로는 비합리적이다. 이러한 특성은 알고리즘이 처리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책에서 소개된 간호사의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숙인의 발을 씻겨주는 행위는 단순한 의료적 처치가 아니라, “당신을 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이다. 이는 기능적 서비스가 아니라 존재의 인정이며, 바로 이 지점이 연결노동의 핵심이다. 노동이 단순히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함께 있음’의 의미를 가질 때, 그것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노동시장과 조직 운영 방식은 이러한 연결노동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식이 표준화와 분절화이다. 상담 업무는 스크립트로 나뉘고, 간호 업무는 체크리스트로 쪼개지며, 교육은 매뉴얼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노동의 질을 저하시킨다. 더 나아가, 인간이 노동을 기계처럼 작동하도록 만들면서 결국 기계로 대체하기 쉬운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흐름은 노동법과 노동정책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첫째, 연결노동의 ‘가치 인정’ 문제이다. 현재의 임금체계와 평가제도는 주로 가시적 성과와 정량적 지표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연결노동은 이러한 틀로 포착되지 않는다. 이는 결국 해당 노동을 수행하는 직군(간호사, 돌봄노동자, 상담사 등)의 저평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향후에는 관계 형성, 정서적 노동, 상호작용의 질 등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 및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둘째, 노동조건의 문제이다. 연결노동은 시간과 여유, 그리고 자율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관계’를 형성할 시간을 박탈당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노동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본질을 훼손하는 문제이다. 적정 인력 배치, 노동시간 규제, 업무 재설계는 연결노동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셋째, 조직문화와 관리 방식의 전환이다. 연결노동은 개인의 ‘헌신’이나 ‘소명의식’에 의존해서는 지속될 수 없다. 조직 차원에서 협력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단기적 효율성보다 장기적 관계 형성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이 필요하다. 이는 특히 의료, 교육, 공공서비스 영역에서도 더욱 중요하다.
AI 시대의 노동 논의는 흔히 ‘대체’와 ‘경쟁’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지막 직업』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직무가 사라지느냐가 아니라, 어떤 ‘관계’를 사회가 유지할 것인가이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 존재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연결노동은 단순한 직무의 하나가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이다. 우리가 이 노동을 계속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겨둔다면, 그 결과는 단순한 일자리 감소가 아니라 사회적 단절의 심화로 나타날 것이다. 반대로, 연결노동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한다면, AI 시대에도 인간 노동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도입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유지해야 할 인간적 요소를 명확히 정의하는 일이다. 연결노동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노동법과 정책이 더 이상 ‘일의 양’만이 아니라 ‘관계의 질’을 다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AI 시대의 노동은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는 효율만을 극대화하는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 사이의 연결을 유지하는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사람의 마지막 직업’이 무엇인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