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일터와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은행 창구는 사라지고, 상담은 챗봇이 대신하며, 보고서와 기획서조차 자동으로 생성되는 시대다. 기술은 분명 효율을 극대화했고, 기업은 생산성을 높였으며, 사회 전반의 운영 방식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의 속도에 비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얼마나 더 빨라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뒤처지고 있는가”이다. 기술 발전은 언제나 이익과 불이익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문제는 그 격차가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될 때 발생한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유능한 노동자’가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도태되는 인력’으로 규정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 자체가 왜곡되기 시작한다.
노동은 단순한 생산 수단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참여를 실현하는 핵심적인 기반이다. 그런데 AI 시대의 노동시장은 점점 ‘효율 중심의 선별 구조’로 변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 자동화, 알고리즘 기반 인사관리 시스템은 노동자를 데이터로 환원시키고 있다. 평가와 통제는 정교해졌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고령층, 장애인, 저숙련 노동자는 구조적으로 배제될 위험에 놓여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망설이는 노인의 모습은 단순한 적응력 부족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과 소비의 장에서 ‘속도를 기준으로 한 배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장애인 역시 기술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순간,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차단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이며, 정책의 문제이다.
노동 전문가의 관점에서 볼 때, AI 시대의 핵심 과제는 명확하다. 기술 발전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혜택과 부담을 어떻게 공정하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첫째, ‘인간 중심 노동정책’으로의 전환이다. 단순한 일자리 창출을 넘어, 기술 변화 속에서도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AI 도입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 전환 과정에서 재교육과 소득 보장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디지털 접근권’을 새로운 노동권으로 인식해야 한다. 정보 접근과 기술 활용 능력은 이제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고령층과 장애인을 포함한 취약계층에게 디지털 교육과 보조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복지가 아니라 권리 보장의 영역이다.
셋째, ‘속도 중심 사회’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노동의 가치는 생산성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돌봄, 교육, 상담, 공공서비스와 같이 인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노동은 오히려 AI 시대에 더 중요해진다. 이러한 영역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기술 발전은 결국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넷째, 기업 거버넌스 차원에서도 변화가 요구된다. AI를 활용한 인사관리와 노동 통제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하며, 알고리즘 결정에 대한 설명과 책임 역시 제도화되어야 한다. 노동자가 ‘관리 대상’이 아니라 ‘협력 주체’로 존중받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기준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사회를 설계할 것인가. 효율과 속도를 최우선 가치로 둘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적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둘 것인가이다.
좋은 사회는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니라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를 기준으로 설계되는 사회다.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의 조건을 고려하는 사회다.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생산적인 노동만이 아니라, 가장 보호받아야 할 노동까지 함께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노동시장이라 할 수 있다.
AI 시대는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을 통해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통해 인간을 더 존중할 것인가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노동의 미래를 결정하고, 결국 사회의 품격을 가른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그리고 그 방향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인간이 배제되지 않는 기술, 그리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전환.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