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는 노동의 종말을 알리는 사이렌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빈틈을 메울 새로운 손과 발이다. 그러나 그 손과 발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비용을 누가 치를 것인지는 결국 법과 제도가 정한다. 또한,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말은 이미 진부하다. 이제 질문은 “가능한가”가 아니라 “누가 이익을 가져가고, 누가 비용을 떠안는가”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는 인력난을 메우는 마법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힘의 관계를 다시 짜는 장치이다고 봄이 옳다.
피지컬 AI는 센서로 현실을 읽고, 판단하고, 팔과 다리로 실제 행동까지 수행하는 인공지능이다. 휴머노이드는 그 피지컬 AI가 가장 노골적으로 구현된 형태이다. 사람처럼 걷고, 집고, 옮기고, 조립하는 로봇인 것이다. 말하자면 생성형 AI가 글과 그림의 세계를 흔들었다면, 피지컬 AI는 공장과 물류창고와 작업대 위로 들어와 사람의 손과 몸을 겨누는 격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이미 저출생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있고, 2030년대에는 취업자 감소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핑계로 곧바로 “그러니 로봇을 더 들여오자”는 말로 뛰어드는 순간, 노동정책은 기술정책의 하청으로 전락한다. 노동력 부족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자동화만으로 풀 수 있는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일이다. 한국의 많은 일자리는 오래전부터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유지돼 왔다. 그래서 저임금, 장시간, 위험작업, 숙련 미흡, 인력난 방치가 쌓여 왔다. 그런 구조에서 로봇이 들어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동안 미뤄둔 개혁이 기술의 이름으로 뒤늦게 폭발하는 것이다. 로봇이 필요해진 이유는 기술이 좋아져서만이 아니라, 인간 노동을 너무 오래 저가로 소모해 왔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는 특히 제조업과 물류업에서 강한 유혹을 가진다. 위험하고 반복적인 일을 24시간 수행할 수 있고, 사람보다 안정적이며, 장기적으로는 비용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기업은 로봇을 “미래 경쟁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말의 다른 얼굴은 분명히 있다. 신규 채용은 줄고, 초급직은 사라지고, 숙련 전수의 사다리는 끊어진다. 결국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사람은 최상위 전문직이 아니라, 경력의 입구에 서 있는 청년과 현장 중간층이다.
더 심각한 것은 기업이 기술 도입을 말할 때마다 노동자는 늘 비용 항목으로만 취급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AI와 로봇이 학습하는 데이터는 노동자의 몸에서 나온다. 작업 방식, 동작 패턴, 숙련의 축적이 곧 로봇의 자산이 된다. 그런데 그 성과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생산성은 올라가는데 임금과 고용은 그대로라면, 그 기술은 혁신이 아니라 약탈이다. “생산성 250%, 보상 100%”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그냥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 로봇 도입을 금지하자는 게 아니라 조건을 붙여야 한다. 노사 합의 없는 무차별 도입은 안 된다. 위험작업 자동화, 전환배치, 재교육, 임금 보전, 안전책임을 패키지로 묶지 않는 한 기술투자는 사회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둘째, 노동시장의 공급을 다시 조직해야 한다. 청년, 여성,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다만 참여율 숫자만 높인다고 끝나지 않는다. 시간제·돌봄·계속 고용·경력 복귀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이민정책을 노동정책의 중심으로 끌어와야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감상적 구호가 아니라 필요한 직종에 맞는 인력정책이다. 숙련 이민, 지역 정착, 언어·자격 인정, 차별 방지까지 포함한 체계 없이는 노동력 부족은 계속 누적될 뿐이다.
넷째, 전환 교육은 개인 책임이 아니라 공적 의무다. 기업은 AI를 들여와 비용을 줄이면서 노동자에게만 재교육 비용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정부는 직업훈련을 구호가 아니라 인프라로 봐야 한다.
특히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라는 자부심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제조업이야말로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의 가장 큰 시험장이 되고 있다. 공장이 사람을 덜 뽑는 구조로 바뀐다면, 그 충격은 생산 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역경제, 하청구조, 청년고용, 산업안전, 노사관계 전체가 흔들린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기술이 들어오는 속도만큼 노동을 보호할 제도는 준비돼 있는가이다.
답은 아직 없다. 그래서 더 강하게 말해야 한다.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는 노동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노동을 분열시키는 기술이 될 위험이 크다. 기업은 효율을 말하고, 국가는 성장률을 말하고, 정치권은 미래를 말하지만, 정작 노동자에게 남는 것은 해고 통지서와 전직 압박일 수 있다. 기술은 멈출 수 없어도, 기술의 비용을 아무렇게나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로봇이 아니라 규칙이다.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은 “얼마나 빨리 로봇을 들이느냐”가 아니라 “누가 밀려나고, 누가 다시 들어올 수 있느냐”다. 노동정책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휴머노이드는 산업의 구원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새로운 폭력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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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