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0조 원짜리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운명이 전력에 달려 있다는 진단은 틀리지 않다. 한빛원전 2호기가 오는 9월 수명을 다해 멈춰서고, 재생에너지는 간헐성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갇혀 있으며, 송전망은 특별법을 만들어도 첫 사업부터 표류하고 있다는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의 지적은 정확히 정부가 지금 마주한 현실이다. 그러나 노무사로서 이 인터뷰를 읽으며 눈에 밟히는 건 다른 대목이다. 전력을 이렇게 걱정하면서, 정작 그 전력으로 돌아갈 공장에서 일할 '사람'에 대한 계획은 왜 이토록 허술한가. 전력 위기 뒤에 숨은 더 근본적인 위기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려 한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 인프라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전력 인프라가 갖춰진들, 그 라인에 투입될 근로자의 전환배치·근로조건·주거와 통근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 역시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 정부와 삼성전자 사이에서, 그리고 정부와 노동조합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쟁의 대상성' 논쟁은 바로 이 두 번째 병목을 정면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전력이 하드웨어의 문제라면, 이것은 소프트웨어, 즉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고 설득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이 소프트웨어 설계에서 정부는 지금 전력 정책 못지않게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 "조합원 84%가 반대한다"는 신호를 가볍게 봐선 안 되는 이유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는 지난 7월 13일, 조합원 약 8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4%가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반대 이유로 제시된 것은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전환배치, 근로조건, 처우였다. 노조는 심지어 "사측 경영진도 두 차례 미팅에서 이 프로젝트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실무 전문가로서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노조가 반대하는 대상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자신의 근무지와 삶이 통보 없이 바뀔 수 있다는 불안이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예견 가능한 노동조합의 반응이다. 수만 명 규모의 사업장이 새로 생기면 필연적으로 인력 재배치가 뒤따르고, 이는 근로자 개인의 거주지·자녀 교육·배우자 직장까지 흔드는 문제다. 둘째, 노조가 이미 지난 7월 1일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음에도 정부가 2주 가까이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강성 투쟁으로 유명한 노조가 파업이 아니라 '대화'를 요청했는데 정부가 침묵했다는 것은, 정책 추진 속도에 매몰된 나머지 노동 리스크 관리라는 기본기를 놓치고 있다는 방증이다.
2. 노란봉투법의 첫 시험대 노동쟁의 대상인가 아닌가.
이 반대 여론을 노조가 2027년 단체교섭 의제로 다루겠다고 선언하면서 사태는 법적 공방으로 번졌다. 근거는 올해 3월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이른바 노란봉투법 제2조 5호다. 이 조항은 노동쟁의의 정의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새로 포함시켰다. 노조는 이를 근거로 "수만 명의 근무지와 처우가 걸린 사업이야말로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7월 13일 즉각 반박했다. "기업 투자, 공장 증설 등 사업 경영상의 결정 자체는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워 단체교섭 및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 이행 과정에서 근로조건의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 경우, 해당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는 사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 행정예고했던 노동조합법 해석지침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법리적으로는 크게 틀리지 않다. 합병·분할·양도 같은 기업조직 변동의 '결정'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그 실현 과정에서 배치전환이나 정리해고처럼 근로조건의 실질적 변동이 발생하면 교섭·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개정법 해석지침에도 명시된 원칙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이 사안을 직접 거론하며 노조 주장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 규정하고, "이런 식으로 하면 끝이 없다"고 못박았다. 노동법을 공부했다는 대통령의 이 발언은, 법리적으로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점과 방식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노동쟁의 대상성 여부는 궁극적으로 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와 법원의 판단을 통해 확정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행정부 수반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진행 중인 노사 간 법적 다툼의 결론을 미리 선언해버리면, 이는 사실상 행정지침 제정 방향에 대한 사전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해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독립적 판단을 위축시킬 소지가 크다. 고용노동부가 이미 합리적인 이분법적 해석지침을 내놓은 마당에, 대통령이 굳이 나서서 "터무니없다"고 단정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발언에는 논리적 허점도 있다. 경향신문이 사설에서 짚었듯, 공장 증설 '결정' 자체는 쟁의 대상이 아니라 해도 그 증설 과정에서 전보 등으로 근무지가 실제로 바뀌면 그 부분은 명백히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모든 경영권 행사가 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큰 명제로 뭉뚱그려버리면, 정작 법이 확대하려던 근로조건 변동에 대한 노동자의 정당한 발언권까지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노동법학계에서도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 자체에 반대하는 요구는 의무적 교섭 사항이 아니"라면서도 "임의적 교섭"의 여지는 인정하는 절충적 견해가 나오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일도양단식 발언은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노정 갈등의 불씨를 키웠다는 점은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3. 메가특구특별법의 속도전이 노동을 저당잡는 두 번째 전선
전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메가특구특별법을 통해 반도체 R&D 인력 등 소득 상위 3% 관리자·연구직에게 주 52시간 상한을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하고,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며,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1월 반도체특별법 제정 당시 민주당 스스로 노동계 반발을 이유로 폐기했던 조항이, 불과 반년 만에 '메가프로젝트의 시급성'이라는 명분으로 부활한 것이다.
에너지 정책에서 정부가 "속도를 위해 원전이든 LNG든 석탄이든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논리 구조가, 노동정책에서는 "속도를 위해 근로시간 규제든 기간제 보호든 파견 규제든 일단 풀어야 한다"는 논리로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에너지 믹스는 실용주의로 포장할 수 있어도, 노동 규제 완화는 다르다. 한 번 뚫린 주 52시간 상한과 확대된 파견·기간제 규제는 특구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반도체 특구에서 시작된 예외가 다른 첨단산업 특구로, 다시 일반 산업으로 번지는 것은 우리 노동법 역사에서 낯선 패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이 "정부가 시행규칙이나 행정지침으로 노동쟁의 대상의 범위를 제한하려 한다면 이는 국회가 입법으로 확대한 노동기본권을 사실상 축소하는 결과"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시점이다. 정부가 한쪽에서는 주 4.5일제 도입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메가프로젝트를 이유로 근로시간 상한 자체를 없애려 한다. 노조가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노동시간 정책의 방향이 하나의 정부 안에서 서로 충돌하는 모습은, 이 인터뷰가 지적한 '산업부는 클러스터, 기후부는 전력'이라는 정책 파편화 문제와 정확히 같은 구조적 병폐다. 에너지 정책이 산업정책과 분리돼 종합적 판단이 불가능해졌듯, 노동정책 역시 메가프로젝트 특위와 노동부 사이에서 파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4. 노무사가 보는 전망, 내년 임단협은 시작에 불과하다.
법리적으로 이 논쟁은 상당 기간 정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합법 해석지침은 행정예고 단계를 거쳐 확정됐지만 아직 참고할 판례나 노동위원회 선례가 없다는 것이 다수 노동법 전문가의 공통된 진단이다. 대통령이 시행규칙과 행정지침을 통해 기준을 명확히 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국회가 입법으로 확대한 노동쟁의 개념을 행정부가 축소 해석하려는 시도로 비칠 위험이 있어 노정 갈등의 또 다른 뇌관이 될 것이 뻔하다. 또한, 실제 전환배치가 구체화되는 시점, 즉 2027년 임단협 국면에서 이 논쟁은 추상적 법리 다툼을 벗어나 현실의 쟁의 조정·부당노동행위 판정 사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때는 "사업경영상 결정" 대 "근로조건의 실질적·구체적 변동"이라는 이분법이 실제 사실관계 속에서 시험대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메가특구특별법 역시 8월 중순 정부안 확정을 목표로 하고 있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노동계와 여당 내 이견이 정면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과 기간제 확대는 반도체 업계의 숙원이지만, 이를 특구라는 명분으로 우회 입법하는 방식 자체가 향후 형평성 논란과 위헌 시비의 소지를 안고 있다 할 것이다.
5. 전문가로서 제언하고 싶은 것은 세 가지.
반도체 클러스터를 서두르기 전에 먼저 던져야 할 질문과 방향 제시는 속도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다
첫째, 정부는 노조가 이미 두 차례 제안한 노사정 협의체 구성 요구에 즉각 응답해야 한다. 협의체를 만든다고 해서 정부가 공장 입지나 투자 규모를 노조와 '교섭'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초기 단계에서 전환배치 기준, 배치 시기, 주거·통근·보상 대책을 노사정이 함께 설계하면, 정작 실제 전환배치가 이뤄질 때 발생할 법적 분쟁과 파업 리스크를 사전에 줄일 수 있다. 협의를 거부하는 쪽이 오히려 나중에 더 큰 쟁의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것은 산업현장의 오래된 교훈이다.
둘째, 고용노동부는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 기대지 말고 '실질적·구체적 변동'의 판단 기준을 조속히 시행규칙과 사례집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전보가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단계'에서도 교섭 요구가 가능하다는 법조계의 해석을 존중해, 투자 발표 이후 조기에 인력 운용 원칙을 공개하고 협의 절차를 개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옳다.
셋째, 메가특구특별법의 노동시간·고용형태 규제 완화는 특구 내 한시적 시범 적용과 일몰조항, 개별 근로자의 진정한 동의, 그리고 별도의 보상·건강권 보호장치를 전제로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허용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을 이유로 규제를 풀더라도, 이것이 다른 산업으로 확산되는 '제도의 학습 효과'를 막을 안전장치 없이는 국회에서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전력망은 예산과 인허가로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노사 신뢰는 대통령의 한마디로 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노동조합의 문제 제기를 "터무니없다"는 말로 덮어버리는 순간, 신뢰는 짓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것이 된다. 한빛원전이 수명을 다해 멈춰 서듯, 지금 이 정부의 노정 신뢰도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유 교수의 지적대로 "일할 사람도, 투자할 회사도 확신하지 못하는 계획"이라면, 문제는 전력 수급 통계가 아니라 정부의 태도임이 분명하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서두르기 전에 다시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이 나라는 원전의 수명은 어떻게든 연장하려 애쓰면서, 왜 노정 신뢰의 수명은 연장하려 하지 않는가. 전력이 끊기면 공장이 멈추지만, 신뢰가 끊기면 그 공장을 지을 사람 자체가 사라진다. 지금 이 정부에 정말로 시급한 문제는 원전이 아니라 노동자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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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