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화려하다. 구직촉진수당 65만 원, K-유스개런티 신설, 자발적 이직 청년 구직급여, 청년고용의무제 연장, 세대 상생형 정년 연장. 8월 4일 고용노동부가 대통령 앞에 내놓은 하반기 업무보고는 다섯 가지 선물을 한꺼번에 풀어놓았다. 그런데 정작 받아 든 청년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청년 고용률은 19개월 연속 뒷걸음질 쳤고, '쉬었음' 청년은 20·30대를 합쳐 이미 70만 명을 넘어섰다. 방향은 맞다. 문제는 늘 방향이 아니라 설계였다.
노무사의 눈으로 이 다섯 가지 카드를 하나씩 뒤집어 보면, 선의라는 포장지 밑에서 재원·원칙·강제력이라는 세 군데 구멍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기에서 고용노동부 하반기 업무보고를 들여다 보고, '청년 일자리 첫걸음 보장제'의 허와 실의 민낯을 짚어 두고자 한다.
1. 65만 원, 오르는 숫자, 사라지는 기준.
구직촉진수당은 2021년 제도 도입 이래 5년 동안 월 50만 원에 묶여 있었다. 올해 처음 60만 원으로 오르더니, 이번엔 65만 원이다. 그런데 불과 석 달 전 고용노동부는 "60만 원→65만 원→70만 원"이라는 3단계 로드맵을 언론에 확인해줬고, 그보다 두 달 앞서서는 국정기획위원회에 "3년간 10만 원씩 올려 80만 원까지"라는 보고를 올린 바 있다. 반년 새 목표치가 8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다시 65만 원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것은 정책이 아니라 널뛰기다.
이쯤 되면 물어야 한다. 이 숫자는 어디서 나왔는가. 생계 안정을 위한 수당이라면 최소한 생계급여나 최저임금 같은 객관적 잣대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65만 원은 2025년 기준 1인 가구 생계급여 76만 5000원에도 못 미친다. "체감형 지원"이라고 자평하지만, 정작 체감의 기준선조차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매번 보도가 나갈 때마다 목표액이 바뀌는 정책을 신뢰하라는 건, 청년에게 또 한 번의 인내를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구직촉진수당 신청 방법에서 중요한 단계는 신청 후 바로 수당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격 심사를 먼저 거친다는 점이긴 하다. 신청서를 제출하면 고용센터에서 소득, 재산, 취업경험 등을 확인하고 수급 자격 인정 여부를 결정하고, 이후 담당자와 상담을 진행하며 취업활동계획을 세우게 되고, 이에 대한 수당은 단순 지원금이 아니라 취업 활동을 전제로 지급되는 제도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2. K-유스개런티, 유럽 이름표를 붙인 국산 재탕.
첫 취업조차 못 한 청년을 위해 졸업 후 4개월 안에 인턴을 연결해준다는 'K-유스개런티'. 이름은 2013년 EU가 내놓은 '유스 개런티'에서 빌려 왔지만, 속을 열어보면 낯이 익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2025년부터 대학생 중심의 '한국형 청년보장제'를 돌리고 있었고, 대기업 일경험 4.3만 명· AI 훈련 4.9만 명 배정 역시 지난해 12월 업무보고에 이미 적혀 있던 숫자다. 새 간판을 걸었을 뿐, 매대 위 상품은 그대로인 것이다.
더 뼈아픈 건 '질(質)'에 대한 침묵이다. 인턴이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지, 몇 퍼센트가 정규직으로 이어지는지, 아무런 공시 기준이 없다. EU의 유스 개런티가 지금도 논쟁거리인 이유는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는 인턴제는 청년을 돌려세우는 회전문에 불과하다. 이름을 유럽에서 빌려 왔다면 그 정신도 함께 가져와야 했다. 4개월짜리 스펙 한 줄을 쥐여주고 다시 '쉬었음'으로 돌려보내는 정책이라면, 차라리 이름을 바꾸지 않는 편이 나았다.
3. 자발적 이직 구직급여, 원칙을 판 대가는 누가 치르나.
가장 뜨거운 카드는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온 청년에게도 구직급여를 주겠다는 방침이다. 고용보험법 제58조는 자기 사정으로 이직한 경우 수급자격을 원칙적으로 제한한다. 실업급여는 '내 뜻과 무관하게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그 근간을 34세 이하 청년에 한해, 생애 1회라는 조건으로 허물겠다는 것인데, 정작 기존 수급자와 얼마나 차등을 둘 것인지는 이번에도 공백으로 남았다.
숫자를 보면 더 아찔하다. 고용노동부가 자체 추산한 소요 예산은 2027년부터 3년간 최대 35조 8000억 원이다. 그런데 이 돈이 나올 고용보험기금은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금을 걷어내면 이미 적자다. 지금 경기가 이어지면 적립금이 조기에 바닥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더 붓겠다는 계획인데, 정작 독을 고칠 계획은 없다. "생애 1회니까 재정 부담이 크지 않다"는 말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결국 청구서는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이름으로 근로자와 사업주 모두에게 돌아온다.
부작용도 뻔하다. '그만둬도 나라가 챙겨준다'는 신호는 입사 초기 청년의 근속 의지를 갉아먹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정부 스스로의 브리핑에서도 나온 바 있다. 부당한 이직과 단순 변심을 가를 심사 기준, 반복수급을 걸러낼 장치 없이 밀어붙인다면, '2027년 시행'이라는 문구만 남고 실행력은 없는 정치적 수사로 끝날 공산이 크다.
4. 청년고용의무제 15년째 같은 처방, 같은 결과.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이 정원의 3% 이상을 15~34세 청년으로 채워야 하는 청년고용의무제는 2004년 도입 이후 만료 직전마다 연장을 되풀이해온, 정책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운 제도다. 2021년, 2023년에 이어 이번에도 "연장하겠다"는 말이 되풀이됐다. 그런데 2025년 성적표는 462개 대상 기관 중 71곳이 낙제였고, 이행률은 84.6%에 그쳤다. 제재라고 해봐야 명단 공표와 경영평가 반영 요청뿐, 부담금이나 가산금 같은 실질적 강제 수단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국회에는 의무 비율을 3%에서 7%로 올리고,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민간기업까지 대상을 넓히며, 미이행 사업주에게 부담금을 물리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그런데 정부의 답은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안전한 화법뿐이다. 15년 동안 반복된 처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통계가 증명했다. 검토만 하고 결정은 미루는 관성이야말로 이 제도의 진짜 병폐다.
5. 세대 상생형 정년 연장, 정부가 스스로 무너뜨린 신뢰.
이번 보고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대목은 따로 있다. 불과 닷새 전인 7월 30일, 청와대는 여당 정년연장특위에 "논의를 당분간 보류해달라"는 뜻을 전달했고, 애초 8월로 잡혔던 국회 처리 일정은 이미 안갯속이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태연히 "하반기 입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소관 부처의 말이 이렇게 어긋나는데, 국민더러 무엇을 믿으라는 것인지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리는 방안은 2029년 61세를 시작으로 2037년 65세 도달을 목표로 짜여 있고, 이를 뒷받침할 예산으로 2026~2029년 3년간 2조 6108억 원이 책정될 예정이었다. 정년이 늘면 청년 채용 문이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답으로 직무·시간·임금체계 개편을 "함께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도 구체안은 없다. 청년에게 무엇을 내줄 것인지 말하지 않은 채 '상생'과 '연대'라는 단어만 반복한다면, 그 구호는 어느 세대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
6. 종합 진단, 선의는 넘치는데 설계는 텅 비었다.
위의 다섯 가지 카드를 관통하는 결함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재원 없는 확대다. 수당 인상과 자발적 이직 구직급여는 모두 이미 휘청이는 고용보험기금에 청구서를 던지면서, 정부는 "연구용역 뒤 내년에 법 개정"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둘째, 강제력 없는 선언이다. 15년째 '연장'만 반복해온 청년고용의무제에 실효성을 더하겠다면서도 구체적 제재 수단은 끝내 내놓지 않는다. 셋째, 조율 없는 발표다. 청와대조차 속도 조절을 요청한 정년 연장을 정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반기 입법"이라 못 박는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 정책은 뉴스는 되어도 신뢰는 되지 못한다.
7. 개선 방향, 지금 당장 해야 할 다섯 가지.
첫째, 구직촉진수당은 생계급여·최저임금과 연동한 자동조정 규정을 법제화해 여론에 반응하는 즉흥 인상을 끝내야 한다. 둘째, 자발적 이직 구직급여는 보험료율 조정, 국고 지원 비율, 반복수급 방지 심사기준을 담은 재원조달 계획을 먼저 공개하고,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시행의 전제 조건으로 못 박아야 한다. 셋째, K-유스개런티는 인턴 임금 수준과 정규직 전환율을 의무 공시해 '저임금 회전문'으로 흐르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넷째, 청년고용의무제는 국회에 발의된 부담금·가산금 신설안에 대한 정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반복 미이행 기관에 실질적 불이익을 법제화해야 한다. 다섯째, 정년 연장은 정치 일정에 휘둘리지 말고 임금체계 개편과 청년 고용장려금을 같은 법안 안에 담는 '패키지 입법'으로 가야 신뢰를 얻는다.
8. 맺음말, 이름이 아니라 책임을 내놓아라.
청년 고용률이 44.3%까지 떨어지고 '쉬었음' 청년이 70만 명을 넘어선 지금, 정부가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다는 절박함은 이해한다. 그러나 절박함은 설계의 정교함을 대신할 변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숫자를 올리고 새 간판을 다는 일은 쉽다. 재원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하고, 제도에 이빨을 달고, 부처 간 말을 맞추는 일은 어렵다. 지금 고용노동부에 필요한 것은 여섯 번째 새 사업명이 아니라, 이미 벌여놓은 다섯 가지 사업의 재원과 실효성을 국민 앞에 숫자로 증명하는 최소한의 책임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