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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의 노사 결렬,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최상률의 일家양得]166 전 고용노동부태백지청장,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노무사

기사입력 2026-08-20 16:37 수정 2026-08-2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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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58년 무분규, 신화가 아니라 방치였다. 숫자 뒤에 감춰진 불신의 경영, 그리고 갈라진 노동의 자화상이다. 1968년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파업을 겪지 않았다는 포스코가, 결국 그 자리에 섰다. 지난 818일 중앙노동위원회는 포스코 노사의 2026년 임금협상 최종 조정회의에서 '조정 중지'를 결정했다. 노조는 합법적 쟁의권을 손에 넣었고, 회사는 창사 58년 만에 첫 파업이라는 벼랑 앞에 섰다.

 

언론은 일제히 "무분규 신화가 흔들린다"며 안타까운 톤으로 이 소식을 전한다. 틀렸다.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58년 무분규는 신뢰의 증거가 아니라 침묵의 축적이었다. 이번 결렬은 그 침묵이 마침내 터진 것뿐이다. 그리고 이 파국에는 죄인이 하나가 아니다. 지주사 체제 뒤에 숨어 곳간 열쇠를 감춘 경영진, 결론만 던지고 대화는 생략한 리더십, 그리고 제 살을 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싸운 노동 진영, 이 세 개의 실패가 만나 지금의 파국을 완성했다.

 

1. 숫자의 간극이 아니라 신뢰의 붕괴다

노조는 기본급 7.1% 인상, 임금 600%에 해당하는 격려금, 우리사주 50, 명절 상여금 200%, 5년 치 자연상승분, 자생안전특별위원회 구성 등 13개 항목을 요구했다. 회사는 기본급 1.5%, 격려금 250만원, 명절 상여금 200만원에 복지포인트 30만원을 얹은 안을 최종안이라며 던졌다. 노조 요구를 전부 들어주려면 14,000억원, 지난해의 두 배가 든다는 게 회사의 방어 논리다.

 

숫자만 보면 노조가 무리한 것 같다. 그러나 착각이다. 협상은 숫자를 흥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근거를 설득하는 자리다. 포스코 노사에게 없었던 것은 적정 인상률에 대한 합의가 아니라, 그 인상률의 근거를 믿을 만한 최소한의 신뢰였다. 신뢰 없는 협상장에서 숫자는 늘 서로에게 폭력으로 읽힌다.

 

2. 사측의 첫 번째 죄, 곳간은 채우고 몫은 감췄다.

노조가 이번에 던진 진짜 카운터펀치는 임금률이 아니라 '캐시카우'라는 한 단어였다. 2022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뒤 포스코가 포스코홀딩스에 지급한 배당금은 20233,200억원에서 20248,880억원으로 뛰었고 2025년에도 5,274억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232826억원에서 202517,804억원으로 줄었다. 실적은 줄었는데 배당 성향은 41%에서 61%로 치솟았다. 벌이는 줄고, 지주사로 새는 몫은 커졌다. 이걸 노동자들이 지켜보고도 얌전히 도장을 찍어야 했나.

 

여기에 장인화 회장이 지난 72일 발표한 그룹 재편안은 2028년까지 3년간 167,000억원을 철강·이차전지·에너지에 쏟아붓는 계획이다. 증권가조차 "철강에서 뽑은 현금을 리튬·에너지에 밀어넣는 것"이라 진단한 그 판에서, 정작 현금을 뽑아낸 현장 노동자에게 돌아온 것은 기본급 1.5%였다. 회사가 아무리 "미래 경쟁력과 직원 사기를 함께 고려했다"고 말해도, 숫자는 정반대를 증언한다. 배당은 늘리고 투자는 키우면서 임금만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요구는, 경영이 아니라 착취의 언어다.

 

3. 사측의 두 번째 죄, 대법원이 세 번 경고했는데도 발표만 하고 대화는 생략했다.

더 참담한 것은 하청 노동자를 다루는 방식이다. 대법원은 지난 716일 협력업체 직원 378명이 낸 소송에서 포스코의 불법파견을 다시 인정했다. 2022, 20264월에 이어 세 번째 확인이다. 현재 1,177명이 참여한 8~10차 소송이 또 진행 중이다. 사법부가 세 번을 확인해줬는데도 포스코는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 판결이 날 때마다 소송으로 대응했을 뿐이다.

 

법을 더는 피할 수 없게 되자 회사는 4월에 협력사 직원 7,000명을 직접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문제였다. 정규직과 분리된 '조업시너지 직군'을 새로 만들어 채용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하청 노조는 "차별 정책"이라며 반발했고, 원청 노조까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등을 돌렸다. 불법파견 문제를 풀겠다며 던진 카드가, 원청과 하청을 서로 등지게 만드는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됐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결론만 통보하고 절차를 생략하면 반드시 저항이 따른다는 사실은, 노무 현장에서 상식에 속한다. 포스코 경영진은 그 상식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무시했다.

 

4. 노동의 죄, 정당한 분노 그러나 갈라진 전선

사측만 때리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노동 진영도 이번에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 원청 노조는 회사의 제시안이 나오기도 전인 78~9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강행했다. 투표율 97.1%, 찬성률 92.2%. 창사 이래 최고 수준의 결의였다. 회사는 이를 "제시안도 없는 상태에서 쟁의권을 먼저 택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 대목에서 노조는 스스로 협상의 명분을 깎아 먹었다. 92.2%라는 압도적 무기를 손에 쥐고도, 그것을 언제 어떻게 써야 협상력이 극대화되는지에 대한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

 

더 뼈아픈 실패는 원청과 하청의 완전한 분열이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원청의 사용자성이 확대된 올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손을 잡고 회사에 책임을 묻기에 가장 좋은 국면이었다. 그러나 원청 노조는 하청 직고용 문제를 "기존 조합원의 복지·안전에 피해가 우려된다"는 형평성 논리로 접근하며 사실상 발을 뺐고, 하청 노조는 "2·3차 총파업"을 독자적으로 경고하며 각자의 전장으로 흩어졌다. 같은 자본, 같은 공장을 상대하면서 서로 다른 싸움을 벌이는 노동자들 즉, 이보다 사측에게 유리한 그림은 없다. 연대하지 못하는 노동은 협상력을 잃는다. 이 단순한 원칙을 포스코 노동 진영은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다.

 

5. 매년 반복되는 각본 조정은 해결이 아니라 요식이 됐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패턴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23년과 2024년에도 노조는 쟁의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중노위 조정 중지로 쟁의권까지 확보했지만, 매번 막판 교섭으로 파업 없이 봉합됐다. '쟁의권 확보 벼랑 끝 타결'이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뜻이다. 이건 성숙한 노사관계가 아니라, 매년 같은 시나리오를 되풀이하는 연극이다. 중노위가 이번에도 조정기간을 늘려 집중교섭을 권고했지만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조정 제도가 매년 같은 시점에 소환되고 같은 방식으로 종료된다면, 그 제도는 갈등을 해결하는 장치가 아니라 갈등을 지연시키는 장치로 변질된 것이다.

 

6. 사측의 대책

첫째, 배당과 투자와 보상의 배분 원칙을 매년 임금교섭 시즌에만 던지는 변명이 아니라 상시적 협의체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 "경영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말은 이제 신뢰를 얻지 못한다.

 

둘째, 하청 직고용처럼 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결정은 발표 이전에 절차를 설계해야 한다. '조업시너지 직군' 같은 정체불명의 카드를 던져놓고 반발을 사후에 수습하는 방식은 반드시 실패한다. 대법원이 세 번 경고한 지금, 포스코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다. 직고용의 대상과 처우, 기존 정규직과의 관계를 노사가 함께 설계하는 것.

 

셋째, "쟁의행위가 발생해도 자동차·조선·건설·가전에 영향이 없도록 비상 대응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말은 방어 전략이지 해법이 아니다. 지금 회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파업의 충격을 어떻게 흡수할까"가 아니라 "58년 만에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파업까지 검토하게 됐는가".

 

7. 노동조합의 대책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는 각자의 테이블에서 싸우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 같은 자본을 상대하면서 갈라진 두 개의 전선은 사측의 협상력을 키워줄 뿐이다. 노란봉투법이 열어준 법적 무기를 실제 교섭력으로 바꾸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리고 92.2%의 쟁의권은 협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13개 항목을 백화점식으로 늘어놓는 대신, 성과 배분 원칙의 투명화처럼 회사의 태도 자체를 바꿀 핵심 요구에 화력을 모아야 한다.

 

8. 정부와 제도의 대책

중노위 조정이 매년 같은 방식으로 소환되고 같은 방식으로 끝나는 각본을 끊어야 한다. 조정 절차를 임금 숫자를 중재하는 자리가 아니라, 노사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실질적 장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의 사용자성이 어디까지 인정되는지에 대한 법리가 사건별로 쌓여가는 지금, 정부와 노동위원회는 포스코 사례를 계기로 원하청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의 공정성부터 손봐야 한다. 대법원이 세 번을 인정했는데도 현장의 처우는 그대로라면, 사법적 구제는 종이 위의 승리에 불과하다.

 

맺으며

58년의 무분규가 지켜온 것은 무엇이었나, 포스코의 무분규는 오랫동안 한국 제조업의 자랑거리로 불렸다. 그러나 이번 결렬이 벗겨낸 진실은 다르다. 그것은 성숙한 노사관계가 아니라, 갈등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 데 능숙했던 관리 기술이었을 뿐이다. 지주사의 곳간은 채워졌고 현장의 몫은 정체됐다. 경영진은 결론만 통보했고, 노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져 각자 싸웠다. 58년 만의 파업 갈림길은 우연히 찾아온 위기가 아니다. 오래 눌러둔 것이 마침내 터진 것이다.

 

지금 포스코 노사에게 필요한 것은 이번에도 파업만 막는 봉합이 아니다. 58년의 신화가 여기까지 왔는지를 직시하는 정직한 진단이다. 그 진단 없이 또 벼랑 끝에서 봉합한다면, 포스코는 59년째, 60년째에도 똑같은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될 것이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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