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조선일보 사설은 일본의 초과근로 규제 완화를 계기로 한국의 주 52시간제가 R&D와 고소득 전문직의 경쟁력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일본 사례를 “월 100시간 초과근무를 새로 허용했다”는 식으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사실관계와 정책적 맥락 모두에서 부정확하다. 일본이 바꾼 것은 법정 상한 자체라기보다, 특별조항이 있는 사업장에 대해 월 45시간 이하로 줄이라고 하던 일률적 행정지도의 운용 방식이다. 법상 월 100시간 미만이라는 상한과 연간 720시간 한도, 건강보호 조치의 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주 52시간제가 아무 문제도 없는 완성된 제도라는 뜻은 아니다. 주 52시간제는 장시간·저임금 노동체제에 제동을 걸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삶의 시간을 회복시킨 중요한 진전이다. 다만 현재의 제도는 업종, 직무, 소득, 노동시장 지위, 업무의 예측 가능성, 실제 노동강도 등을 충분히 구별하지 못한 채 ‘주 단위 총량’이라는 하나의 잣대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장시간 노동의 빗장을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노동시간 규제의 초점을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만이 아니라 “누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보상과 건강보호 아래 일하는가”로 정교하게 옮기는 일이다. 주 52시간제의 성과를 지키되, 획일 규제에서 건강·선택·보상 중심 체계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1. 일본을 잘못 읽은 사설
조선일보 사설의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정책변화를 마치 “노사가 합의하면 월 100시간까지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법을 풀었다”는 듯 서술한 데 있다. 일본의 현행 틀은 주 40시간 법정근로를 전제로 하며, 원칙적으로 시간외근로는 월 45시간·연 360시간 범위에서 허용된다. 다만 예측하기 어려운 업무량 급증 등의 사유가 있고 노사 간 특별조항이 마련된 경우에는 연 720시간 범위에서 예외가 인정되며, 휴일근로를 포함한 월간 시간외근로는 100시간 미만이어야 한다. 더구나 2~6개월 평균도 월 80시간 이내여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따라서 이번 일본 조치를 “월 100시간 초과근로를 허용한 규제 완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장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후생노동성이 2026년 9월부터 특별조항을 둔 사업장에 대해서도 일률적으로 ‘월 45시간 이하로 줄이라’고 지도하던 방식을 바꾸고, 해당 사업장의 건강보호 조치와 실제 노동조건을 개별적으로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건강장해 위험이 큰 경우에는 여전히 지도 대상이 된다.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법정 상한을 없앤 것이 아니라 감독행정의 초점을 ‘일률적 시간 감축’에서 ‘개별 사업장의 건강보호 실효성’으로 일부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변화가 옳은지 여부는 별도로 논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시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려면, 최소한 일본이 과로사 문제와 2015년 덴쓰 노동자 사망 사건을 거치며 장시간 노동을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해 온 역사부터 함께 읽어야 한다. 일본이 ‘가로시’의 나라라는 사실을 지우고 일본의 완화만을 경쟁력의 증거처럼 제시하는 것은 선택적 비교일 뿐이다.
더욱이 월 100시간의 연장근로는 결코 가벼운 수준이 아니다. 주 5일 근무를 전제로 단순 계산하면 한 달에 100시간의 연장근로는 하루 약 5시간의 추가노동을 뜻하며, 휴게시간을 제외하고도 하루 13시간 안팎의 노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몰입’이나 ‘선택’이라는 말로 미화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노동자의 수면, 회복, 가족생활, 정신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노동강도다.
2. 주 52시간제의 성과와 한계
한국의 주 52시간제는 주 40시간 법정근로와 노사 합의에 따른 주 12시간 연장근로를 결합한 제도다. 사용자가 이를 넘겨 노동시키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단순한 시간 배분이 아니다. 장시간 노동을 기업의 관행과 노동자의 ‘충성’에 맡기지 않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사회적 합의다.
한국은 오랫동안 OECD 최상위권의 장시간 노동 국가였다. 노동시간 단축은 청년고용 확대, 산업재해 예방, 돌봄과 가족생활의 회복, 성별 노동분업 완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개선과 연결되는 과제였다. 지금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일본보다 길다. 2025년 기준으로 한국은 1,846시간, 일본은 1,614시간으로 집계됐다. 일본의 감독방식 변화만을 근거로 한국이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제도의 공익적 목적이 분명하다고 해서 운영상의 문제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주 52시간제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안고 있다.
반도체 개발, 소프트웨어 출시, 신약 임상, 게임·콘텐츠 제작, 국제 프로젝트 대응처럼 업무량이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직무에서는 주 단위 상한이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연장근로 수요가 실제로 존재함에도 법적 통로가 협소하면, 근로시간 기록을 왜곡하거나 포괄임금제와 형식적 재량근로를 통해 규제를 우회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대기업 정규직 연구개발 인력과 영세사업장 저임금 노동자를 똑같이 다루는 방식은 보호의 필요성과 교섭력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근로시간을 줄인 뒤에도 업무량, 인력충원, 납품단가, 원·하청 구조가 그대로라면 노동시간 단축은 압축노동과 ‘보이지 않는 초과노동’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근로자가 실제로는 더 일하고 싶어 하는 경우에도, 현행 제도는 시간저축·보상휴가·선택적 추가근로와 같은 다양한 선택지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
결국 문제는 “52시간이 너무 짧다”가 아니다. 핵심은 시간 규제만으로는 업무량과 인력, 임금, 교섭력의 불균형을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기업은 사람을 더 채용하고 업무를 재설계해야 하며, 정부는 원청의 납기·단가 압박과 공짜 야근을 통제해야 한다. 반대로 기술혁신과 연구개발의 속도를 위해 예외를 논의하려면, 예외가 장시간 노동의 일반화로 번지지 않게 훨씬 더 촘촘한 안전장치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3. ‘선택권’은 누구의 선택인가
조선일보 사설은 “더 일해 소득을 올리고 싶은 근로자의 선택권”을 강조한다. 이 문제 제기 자체를 가볍게 볼 필요는 없다. 물가와 주거비 부담 속에서 연장근로수당을 생계의 일부로 의존하는 노동자가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연구개발직이나 프로젝트형 전문직 가운데에는 특정 기간 집중근무 후 충분히 쉬는 방식의 근무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노동법이 경계해야 할 것은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외피를 쓴 강요다. 노동시장에서 사용자는 업무 배정권, 평가권, 승진권, 재계약권을 가지고 있고, 많은 노동자는 생계와 고용불안을 안고 있다. 이런 관계에서 “동의했으니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동의가 실질적으로 거부 가능한 것이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저임금·비정규직·이주노동자·플랫폼노동자·하청노동자에게 초과근로는 선택권이 아니라 생존권의 문제로 작동하기 쉽다. ‘월 100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권리’는 기업의 지시를 거절하기 어려운 노동자에게 ‘월 100시간까지 일해야 하는 의무’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노동시간 규제를 완화할수록 기업의 비용 절감은 즉각 나타나지만, 과로·산재·이직·돌봄 공백·출산 기피의 사회적 비용은 개인과 가족, 공공의료와 사회보험 체계가 떠안는다.
따라서 노동시간 제도에서 진짜 선택권은 단순히 “더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초과근로를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 일한 시간만큼 투명하게 임금을 받을 권리, 집중근무 뒤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을 권리, 건강이 나빠질 때 업무를 줄일 권리까지 포함해야 한다. 이 권리가 없는 곳에서 초과근로 확대는 선택권이 아니라 종속의 강화다.
4. 필요한 것은 ‘정교한 유연화’
한국은 ‘전면 완화’와 ‘현행 고수’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연구개발과 고숙련 전문직에 대한 별도 제도를 논의할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은 특정 산업의 기업 요구를 수용하는 특례가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임금권·거부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조건부 제도여야 한다.
첫째, 직무·소득·재량을 모두 갖춘 경우에만 제한적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 단지 직함이 연구원·팀장·관리자라는 이유만으로 면제해서는 안 된다. 고도의 전문성, 실질적 업무재량, 일정 수준 이상의 보수, 근로시간을 스스로 기록·통제할 권한이라는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미국식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수입하더라도, 명칭이 아니라 실질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둘째, 개인별 명시적 동의와 불이익 금지를 법제화해야 한다. 노조나 근로자대표의 포괄합의만으로는 부족하다. 해당 근로자가 연장근로 특례에 개별적으로 동의해야 하고, 언제든 철회할 수 있어야 하며, 철회나 거부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동의가 강요되지 않았는지 노동 감독기관이 검증할 수 있는 절차도 필요하다.
셋째, ‘시간 상한’보다 더 강한 건강보호 장치를 결합해야 한다. 일본식 유연화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지점은 건강보호 조치가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다. 한국의 특례는 최소한 다음 요건을 법률 또는 하위규정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11시간 이상의 연속 근무시 휴식시간을 원칙으로 보장할 것
심야근로와 장시간 근로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즉시 업무조정 또는 추가휴식을 부여할 것
월별·분기별 누적 노동시간과 야간노동을 함께 관리할 것
고위험 노동자에 대한 의무적 건강상담 및 산업의학적 조치를 마련할 것
집중근무 기간 종료 뒤 보상휴가를 강행규정으로 보장할 것
실제 출퇴근·접속·회의·업무지시 시간을 전자적으로 기록할 것 등이다.
넷째, 예외는 ‘무상 연장노동’의 통로가 아니라 더 높은 보상의 통로여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이라 하더라도 장시간 노동이 공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연장·야간·휴일노동에 대한 가산수당 원칙을 유지하고, 예외적 집중근무에는 통상적인 1.5배를 넘어서는 추가 보상 또는 동등 이상의 유급 보상휴가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기업이 초과노동을 값싼 인력운영 수단으로 쓰지 못하게 해야 진정한 유연성이 가능하다.
다섯째, 산업별·사업장별 노사교섭을 활성화해야 한다. 노동시간은 법률만으로 완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연구개발의 마일스톤, 생산의 성수기, 프로젝트의 긴급성, 인력 충원 계획, 휴식과 보상 방식은 산업별로 다르다. 법은 최소기준과 건강보호의 하한선을 정하고, 그 위에서 노사가 투명하게 협상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노조가 없거나 교섭력이 약한 사업장에서는 국가의 감독과 공적 대표제도가 더 강하게 작동해야 한다.
5. 경쟁력은 장시간이 아니라 설계에서 나온다
반도체와 AI 시대의 경쟁력을 말하면서 노동시간만을 해법으로 꺼내는 것은 낡은 산업정책이다. 연구개발 경쟁력은 밤샘의 총량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수 인재의 확보와 유지, 실패를 허용하는 조직문화, 적정 인력, 연구자율성, 신속한 의사결정, 데이터·장비·자본에 대한 접근, 그리고 충분한 회복시간에서 나온다. 피로가 누적된 연구자의 장시간 노동은 창의성과 정확성을 높이기보다 오류와 이직, 건강장해를 키울 수 있다.
현행 제도의 경직성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 해법이 월 100시간 초과근로를 경쟁력의 상징처럼 받아들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일본의 사례는 ‘장시간 노동으로 돌아가자’는 본보기가 아니라, 일률적 규제와 개별 건강보호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경고이자 질문으로 읽어야 한다.
나가며
한국의 노동시간 개혁은 세 가지 원칙 위에서 추진돼야 한다. 첫째, 주 52시간제의 건강권 보호라는 기본선을 후퇴시키지 말 것. 둘째, 고숙련·고재량 직무의 현실에 맞는 제한적 유연성을 인정하되, 개인 동의·거부권·실근로시간 기록·휴식·보상을 조건으로 할 것. 셋째, 영세사업장과 취약노동자에게는 예외 확대가 아니라 노동감독 강화, 인력지원, 임금체계 개선을 제공할 것이다.
노동시간 정책의 목표는 “더 오래 일하게 하는 것”도, “어떤 경우에도 더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가 과로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면서도, 필요한 때에는 투명한 합의와 충분한 보상 아래 일의 리듬을 조절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가 논의해야 할 것은 주 52시간제를 허물 것인가가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과 실질적 선택권을 지키면서 어떻게 더 정교한 노동시간 체계를 만들 것인가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