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는 구호가 아니라 제도로 세워야 하고 노동이 무너지면 나라의 미래도 무너진다는 경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막에서, 광산에서, 병원에서 땀을 흘린 부모 세대의 이야기는 여전히 뭉클하다. 그러나 노동전문가의 눈으로 다시 읽으면, 이 진단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청년이 힘든 일을 피하는 것은 그들이 게을러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일이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경력의 단절과 안전의 위험을 함께 짊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1. 노동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고 있다
2025년 고용허가제(E-9) 외국인 근로자는 13만 명 규모로 운용되고 있고, 국내 외국인 취업자는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내국인이 떠난 자리를 외국인이 메우고 있다는 사실은, 노동 자체가 경시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노동의 조건이 방치되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최근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중소기업들이 사람을 채우지 못하는 이유의 20% 이상은 "임금 등 근로조건이 구직자 기대와 맞지 않아서"였다.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대가의 문제라는 뜻이다.
여기에 통계 하나를 더하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1시간으로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이고, 2025년 합계출산율은 0.80명으로 OECD 38개국 중 가장 낮다. 오래 일하고 적게 보상받는 구조에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노동을 존중하자고 말하기 전에, 그 노동이 정당하게 대가를 받고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2. 존중은 감성이 아니라 설계의 산물이다
노동의 형태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위탁·용역 계약을 맺었지만 실질은 근로자인 이른바 '가짜 3.3'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정부는 '일하는사람기본법' 제정과 근로자 추정제 도입을 추진하며 2026년 노동절을 입법 목표로 잡았다. 동시에 인공지능은 노동시장을 두 갈래로 갈라놓고 있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은 생산성과 고용, 임금이 모두 더 빠르게 늘었지만, 신입 일자리조차 시니어급 역량을 요구하는 쪽으로 재편되고 있다. 고숙련·고보상과 저숙련·저보상의 격차는 벌어지고, 그 틈에서 "성실하면 존중받는다"는 구호만으로는 아무도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웃 나라들은 이 문제를 정신교육이 아니라 제도로 풀었다. 독일은 마이스터 제도를 통해 기술직 숙련공을 대졸 사무직과 대등하게 대우하는 체계를 법과 임금으로 못박았다. 싱가포르는 국민 1인당 재교육 바우처를 지급하고, 40세 이상 중간경력자를 채용한 기업에는 임금의 40퍼센트를 지원하는 스킬스퓨처(SkillsFuture) 정책으로 2021년 한 해 66만 명이 넘는 국민을 재교육 시장으로 끌어들였고, 참여자의 87퍼센트가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존중은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예산과 법의 문제라는 사실을, 두 나라는 이미 증명했음을 보여준다.
3. 땀의 가치를 되살리는 다섯 개의 못
노동의 가치를 되살리려면 몇 개의 못을 단단히 박아야 한다. 기피 업종의 임금과 안전을 법으로 정상화하는 못, 원·하청과 정규·비정규의 격차를 줄이는 임금연대의 못, 플랫폼과 프리랜서로 밀려난 이들을 노동법 안으로 끌어들이는 못, AI가 밀어내는 자리에서 새 자리로 옮겨갈 수 있도록 국가가 재교육을 책임지는 못, 그리고 기술과 현장 노동의 사회적 지위를 대졸 사무직과 대등하게 세우는 못이다. 이 다섯 개의 못이 박히지 않은 채 외치는 "노동은 자랑스러운 것"이라는 구호는 공허한 위로에 머물 뿐이다.
4. 노동은 천한 것이 아니고, 방치된 노동이 천하게 취급받는 것이다
바닷가의 파도가 쉬지 않고 움직이듯, 일하는 사람도 쉬지 않는다. 그러나 파도가 부딪히는 방향과 세기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이지 파도 자신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얼마나 존중받는가는 개인의 근성이 아니라 임금, 안전, 경력경로를 설계하는 사회의 몫이다. 대한민국의 기적이 땀과 눈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게 그 기적을 다시 요구하려면, 이번에는 땀에 정당한 값을 매기는 제도를 먼저 세워야 한다. 그것이 진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