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았다. 2002년 '오아시스' 이후 24년 만의 개인 수상이자, 한국 영화가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은 2012년 '피에타' 이후 14년 만이다. 그러나 정작 감독이 수상 소감으로 남긴 말은 축하보다 경고에 가까웠다.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상을 주신 것은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 이 한 문장은 두 개의 진단으로 쪼개진다. 노동이 사라진다는 것과, 사람 사이가 끊어진다는 것. 심사위원대상보다 무거운 질문, '가능한 사랑'이 겨눈 해고 이후의 시간 노동 실무를 다루는 입장에서 이 둘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붕괴가 만들어내는 두 개의 균열이다.
1. 해고는 두 번 일어난다
영화는 해고노동자 호석(설경구)과 아내 미옥(전도연), 그리고 이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남편 상우(조인성), 두 부부의 만남을 그린다. 이창동 감독은 "십여 년 전 한국의 한 대기업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리해고와 그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업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사건"에서 이 이야기를 착안했다고 밝혔다.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가 자연히 겹쳐진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는 당시 진압 작전에 대통령의 최종 승인이 있었고, 발암물질 최루액과 테이저건이 위법하게 동원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그 사태로 노동자와 가족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사실이 있다. 해고는 소득의 상실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리해고는 일자리와 함께 동료를, 소속감을,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관계망 전체를 한꺼번에 끊어낸다. 감독이 이 사건을 17년째 붙들고도 쉽게 영화로 옮기지 못했던 이유 즉 "극영화로 옮기는 것이 윤리적인가"의 물음이 여기에 있다. 해고는 경제적 사건이자 관계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2. 첫 번째 균열, 노동이 사라진다
감독은 이 영화를 과거의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기술 발전과 함께 노동 자체가 소멸하는 시대에 왔다"고 잘라 말했다.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국내 500대 기업 중 316개사의 임직원 수는 1년 새 5,046명 줄었다. 여기에 AI가 새로운 축을 더한다. 올해 5월 기준 IT·전문직 청년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7.6%, 8만 1천 명 감소해 통계 집계 이래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피지컬 AI'까지 상용화되면 전체 일자리의 27%, 네 명 중 한 명이 대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이 마주했던 "이 자리는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는 공포가, 이제는 특정 공장이 아니라 노동시장 전체를 관통하는 상시적 위협이 됐다. 감독의 대사를 빌리면 "노동자가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것을 앞으로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우리는 모두 노동자일 수밖에 없으니까"이다.
3. 두 번째 균열, 사람 사이가 끊어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노동이 사라지는 방식 자체가 관계를 끊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실태조사는 플랫폼 노동을 "직장동료 없는 노동"으로 규정한다. "전통적으로 직장은 동료나 거래상대자와 사회관계를 맺는 장소로서 역할을 했다. 플랫폼 노동은 우리가 알던 사회적 관계, 공동체 구성에서 노동과 일의 노동공동체의 해체가 예상된다"고 하였다. 배차와 평가를 관리자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결정하는 노동에는 함께 싸우고, 위로하고, 파업을 조직할 동료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노동조합 조직률은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준인 9.8%까지 떨어졌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는 사실이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을 옥쇄파업으로 이어준 것이 동료애와 조직력이었다면, 지금 늘어나는 나쁜 일자리는 그 연대의 물리적 기반 자체를 지워버리고 있다. 그 결과는 개인의 삶에도 고스란히 새겨진다.
2024년 기준 1인가구는 804만 5천 가구로 전체 가구의 36.1%,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정부가 처음 공식 조사한 결과 1인가구의 48.9%가 "외롭다"고 답했다.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을 사람이 있다고 답한 1인가구는 45.6%에 그쳐, 넷 중 하나 이상은 돈이 급할 때 기댈 사람조차 없다. 중장년 남성 고독사는 여성보다 5.3배 많았다.
통계청이 올해 5월부터 '고립'과 '은둔'을 사회조사 정식 항목으로 신설한 것 자체가, 이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구조적 위기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4. 두 균열은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영화가 두 부부를 나란히 배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해고노동자 부부와, 그들을 취재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 계급도 처지도 다르지만 양쪽 모두 상대와의 관계에서 감춰온 욕망과 균열을 마주한다. 노동의 소멸과 관계의 단절이 노동자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노동이 사라지면 사람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라지면 사회가 그 상실을 대신 짊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법과 제도는 여전히 첫 번째 균열, 즉 소득의 상실만을 문제로 다룬다.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 선정 기준, 성실한 협의)은 2009년 이후 큰 틀에서 그대로다. 정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노동자 144만 명을 위한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제정과 고용보험의 소득 기준 개편을 추진 중이지만, 이는 여전히 경제적 보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무제공자의 월 기준보수가 133만 원으로 고시되는 현실이 말해주듯, '가입 대상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 '고립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5.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질문
'가능한 사랑'은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해고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 트라우마를 안고도 관계를 맺고, 욕망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조건을 응시할 뿐이다. 감독이 남긴 숙제에 노동 실무와 정책의 언어로 답한다면 이렇다. 정리해고 이후의 재취업·재교육·소득 보전을 아우르는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동시에 관계망까지 잃지 않도록, 실직과 고립을 함께 다루는 통합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플랫폼·특고 노동자에게는 이름뿐인 고용보험이 아니라 실질적 보호와 더불어, 사라진 '직장동료'의 자리를 대신할 사회적 연결 장치가 필요하다.
AI가 만들어낼 새로운 유형의 실직은 소득만이 아니라 소속감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심사위원대상은 이미 배우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노동이 사라지고 관계가 끊어지는 이 시대에, 그 질문에 제도로 답할 몫은 스크린 밖의 우리에게 남아 있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